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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일 보고싶으세요?

요양원 주위에 서서히 은빛노을이 내리고 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분주했던 일과를 정리하며 모두들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 쉼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여전히 거실에 앉아계신 몇 분의 할머니들이 계시다. 그중에 이할머니 앞에 살며시 앉아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늘상 가방을 달고 사신다.

“밥은 먹었나?”

“네, 할머니.”

약간의 적막이 흐르자 나에게 없던 장난기가 발동이 걸렸다.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 내가 ㅇㅍㅛㅏ~”

난 성함을 이미 알고 있지만 할머니는 이름과 관련된 그 어떠한 모음도 연관된 단어가 없었다.

“이00 할머니 아닌가요?”

“응 맞아, 이00..”

젊은 것이 어떻게 늙은 자신의 이름을 알았냐는 듯이 놀라신다. 그리고 더욱 친근한 사람이 되어 나를 바라다본다. 혹시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싶어 하는 눈치다.

“할머니, 누가 제일보고 싶으세요?”

부질없다는 듯이 잠시 머뭇거린다.

“제일 보고싶은 사람 없으세요?”

“왜 없어.. 있지!!”

“누군데요?”

“엄마…….”

난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구십을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어머니”도 아닌 “엄마”가 살아 계실리 만무하지 않은가! 늘상 큰아들만 자랑하셨기에 당연히 큰아들이 보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엄마를 보고 싶어 하신다. 자식 속에 사는 힘없는 늙은 어머니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엄마를 보고 싶어 하신다. 아무리 과거속에 사시는 치매 어르신이라 할지라도 어린 시절의 젊은 엄마는 현재진행형이 아니다. 그렇다고 엄마를 부정할 수 도 없는 현 상황이다. 할머니는 정신이 사라진 병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디 계신가요?”

“밭에서 일하고 있잖아. 얼른 가봐야 해”

일어서는 할머니 손에 쥐인 가방이 보인다. 난 순간 코끝이 뭉클해졌다. 순간 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해졌다. 조금 후 난 할머니의 엄마가 되어 살며시 안았다.

“할머니, 지금은 밤이 깊어져 차가 끊어졌어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전할게요.”

난 할머니 등 뒤로 따스함을 한참동안 말없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아가야, 엄마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단다.’

난 지금 누가 제일 보고 싶은가! 퇴근해 집에 가면 세상의 전부인 딸아이가 “아빠”하며 달려와 안기지 않는가! 온통 자식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땅위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세월을 깎고 피와 땀으로 헌신해 이가 닳고 무릎이 깨져 이겨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을 이고 지금 각자의 요양원에 살고 있지 않은가! 기억을 앗아간 치매어르신의 엄마는 오늘을 사는 이 땅위의 모든 자녀들에게 어머니를 사랑하라고, 그 사랑을 실천(할머니의 가방)하라고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주머니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먼지 묻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